대학교수 생활이 33년간 이어졌다.
3년간 부산발전연구원장, 시라큐스 맥스웰대학원 초빙연구원 그리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등 5년간을 제외하면 28년간 동의대학교에서 생활한 셈이다. 일반 직장인들처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직장은 아니지만 연구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많았다. 따라서 삶의 대부분을 연구실에서 보냈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강의실도 큰 부분을 차지했었다. 물론 중간에 중앙도서관장직을 맡아 관장실도 일부 의미 있는 장소였다.
어디에 있었던 중요한 부분은 대학교수로서의 강의와 연구가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이다. 정년퇴직한 지 8년이 지나는 지금 이전 생활을 되돌아보면 과연 무엇을 가르쳤을까? 물론 강의과목이 있으니 강의과목에 맞는 교재와 강의 노트를 바탕으로 강의를 진행했겠지만 반드시 강의 내용을 매년 반복해서 가르친 것은 아니었다.
소속이 행정학과이었고, 따라서 일부 학생들은 공무원 시험을 통해 사회 진출하고자 학과 선택을 하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대학 생활을 하면서 상담이나 선배들의 조언을 통해 공기업이나 일반 사기업으로 진출해 나갔다. 그렇다 보니 행정과 공직을 중심으로 한 강의에 대해서는 큰 매력을 느끼는 학생 수가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중점적으로 강의한 부분은 ‘전자정부’였다. 아마도 전국에서 이 강의를 처음 개설한 것으로 알고 있다. 조사방법론도 이름을 ‘인터넷을 이용한 조사방법론’으로 바꾸었다. 정보기술의 이해도 겸해야 했으니 결코 쉬운 과목은 아니었다. 그래도 한때는 행정고시와 외무고시에 ‘정보체계론’ 과목이 도입되어, 두세 번 고시 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PC가 몇 번 교체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교체할 때마다 데이터를 옮기곤 했지만 초기 강의자료는 거의 없다. 따라서 강의 노트도 대부분 망실되었지만 그래도 살아 남아있는 자료들이 있어서 이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대부분 관심 없는 글이겠지만 나에게는 나름대로 의욕과 자부심을 갖고 다양한 형태의 자료를 찾아보고, 내용을 구성하여 학생들에게 전달한 것이다. 지금 자서전적 글을 블로그에 올리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기록으로 의미는 갖고 있다고 본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인터넷이 점차 확산되고, 대학들도 망사용료를 내고 있기 때문에 인터넷사용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교육부가 대학 수업에 인터넷 사용하는 것을 대학평가기준에 도입하면서 대학마다 강의실에서 벗어난 원격강의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지난 강의자료를 뒤지다가 2002년 1학기 원격강의 보고서를 발견하였다. 컨텐츠와 수업 진행방식은 교수가 만들고, 원격강의 시스템은 민간기업 것을 사용하고, 학생들은 컴퓨터에 접속하여 강의를 듣고, 각종 조사도 병행했었는데, 학생들은 시간과 장소의 제약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지만 새로운 방식의 수업은 꽤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거의 20년 후에 코로나 펜데믹으로 대면 강의가 전면 중단되고 온라인 강의가 중심이 되었다. 정년퇴직 후 일어난 일이지만 변화는 항상 먼저 일어난다는 것이다. 단지 그것이 변화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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